죄가 불편하지 않은 이유

2018. 12. 11. 19:00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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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자리에 앉아 내가 가진 목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내가 가진 동기는 무엇으로부터 출발한 것일까 고민했다. 내 동기 이면에는 숨은 목표가 있었다. 일종의 복수라고 할 수 있는 숨은 목표가 있었는데, 이를 감추는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었다. 결코 선한 목표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럴듯한 명분을 대외적으로는 진정성을 가진 선한 목표로 내세웠다. 최대한 아름답고 의미있게 포장해서 발표를 하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내면의 동기가 선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칭호가 어울린다. 나를 위한, 그리고 나에 의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왜 나는 이렇게 죄에 민감하지 않은지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죄의 결과를 모른다. 엄밀히 말하자면, 겪어본 경험이 없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오직 예수님 뿐이다. 그래서 나의 죄에 대해 예수님이 왜 아픈지를 공감할 수 없다. 내가 죄를 짓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왜 예수님의 고통은 나의 죄와 연결될까.


최근 나에게 아픔이 되는 것은, 아버지의 경제적 측면에 대한 지식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아버지가 선 보증에 의한 은 나에게 어려움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길을 포기해야 하고, 그리고는 조금 더 힘든 길을 걷게 되었다. 내가 경제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는, 아버지가 가진 빚의 의미와 그것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어떤 결말을 향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금융과 경제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지금까지 무지했던 것에 후회를 느낀다. 그리고 이제는 채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채무 관리에 위기가 오면 이것이 곧 나에게 고통이 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히려 채무 관리를 망치는 방향으로 한 걸음을 떼셨다. 마음이 가라앉고, 내 꿈이 멀어지는 것만 같아 슬퍼졌다.


이것이었다. 나는 내 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전혀 모른다. 내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예수님은 나를 바라보시고, 내가 아버지한테 느끼는 감정을 예수님은 나한테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이 정도만 돌아봐도, 나는 내가 지난 수많은 시간동안 드렸던 예배에 대해 어떤 태도였는지를 볼 수 있었다. 눈을 뜨고 있으나 감은 것과 같았고, 귀는 열려 있으나 닫힌 것과 같았다. 뒤늦게 후회하지 않도록 바로 죄의 결말에 대해 바로 알아야겠다.


죄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기 위해 죄가 나에게 미치는 결말을 더 깊이 있게 묵상하기로 한다.



연결되는 구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_누가복음 18장 19절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_요한계시록 1장 7절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하니 /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 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보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사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애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 청년들에게 명령하매 곧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

_사무엘하 4장 8-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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